점심이나 저녁 시간에 밥 먹으려고 앉은 모임. 두 명이든 세 명이든 다섯 명이든 심지어 열 명이든, 오래 보면 언젠가는 다들 할 이야기가 없어서 각자 누워서 자기 할 일을 한다. 아니면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 하던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는 바닥났다.
율을 제외한 다른 세 명은 스마트폰 화면을 돌려 보면서 시끄럽게 떠든다. 웃음이 멈출 때는, 가끔 묵이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우리를 불러 그걸 보여주고는 했다. 인터넷 상류에서 흐르고 흘러 SNS까지 도착한 밈 내지는 밈 비슷한 것들이였다. 묵이 뭘 보여주건 과하지 않게, 동시에 그렇게 내색하는 티도 내지 않으며 적당히 웃느라 지쳐버린다. 다른 두 명은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다. 이는 뭘 하고 있는지 뭘 하고 사는지 도통 모를 음침한 괴짜고, 장은 예나 지금이나 수상할 정도로 말을 꺼내지 않는 인간이다.
평소라면 그냥 떡볶이만 조용히 먹고 잠이나 자면 그만일 테다. 오늘따라 상태가 좋지 않았다. 구태여 옆에 있는 율에게 혼잣말 하듯이 물었다. 나조차도 왜 그런 말을 꺼냈는지 모를 정도로.
심심해
재미있는 이야기 해드려요?
아니
...
미안
아녜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
그럼 왜 그래요?
몰라
모르는 게 많네요.
그런가
그래요
그럼 그냥 아무 이야기나 할 게요. 그냥 들어만 주세요.
율은 어제 소화 던전에서 떡볶이를 먹는 대신 저녁을 먹었다고 했다. 무려 그 맛 없는 저녁을! 그리고 점심 때 나오는 식판과 저녁 때 나오는 식판의 차이점을... 두께와 경도에... 어쩌구... 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떤 주제를 던져주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재미있는 부분을 빨아내려는 율의 그 열정은 좋아했지만 편집증에 가까운 설명을 듣고 있을 기운은 없어서, 거의 듣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만 하고 있었다. 실은, 기운이 없는 게 아니다. 화가 났다. 짜증이 났다. 말하려다 말았다. 다들 이게 재밌는건가? 만일 재미도 의미도 뭣도 없다면 나도 그렇고 이 모임도 그렇고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여기 모여서 떡볶이 먹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는 건가?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는 건가? 그러나 여기에서 가장 재미없는 인간은 나였고 시간을 보낼 줄 모르는 것도 나 혼자 뿐이였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게 율의 말대로였다.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사실 이 떡볶이 모임이나 소화전 뒤에 파여진 땅굴이나, 물어볼 것들이야 많은데, 너도 그렇고 여기에서 가장 오래 있었던 장도 그렇고, 아무도 대답을 해 주질 않으니까, 해 줘도 무슨 이상한 소리만 하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그래도 슬픈 일이 있는 것 보단 낫지 않나요.
그래, 그렇지.
무기가 항상 저런 식이여도 웃는 방식 좀 웃기지 않나요.
그래, 그렇지.
대화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말 하는 내내 나는 몸을 이불 속에 돌돌 말고 시트 속에 푹 박혀 있었다. 율을 마주보지 않고 벽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뭔가, 율한테 예의도 뭣도 없이 내 우울함만 내보이는 것 같아 보였다. 율 쪽으로 몸을 휙 하고 돌렸다. 율과 부담스러울 정도로 오랜 시간 눈이 마주쳤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꼼짝도 하지 않았다. 율은 분명 무슨 생각에 빠진 것 같았지만, 나와 눈은 마주치고 있었다. 율은 부끄러움이 없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율은 부끄럽지도 않나. 대단한 능력인 것 같았다. 얘는 처음부터 그랬고, 나를 여기로 끌고 왔을 때도 그랬고... 그렇게 따지면 아직도 가만히 있는 나도 대단한 건가. 아니면, 둘 다 같은 생각으로 이렇게 있는 것이거나. 율도 사실은 나처럼 피곤하거나... 아니면 아무 생각 없던가... 묘한 정적이 흘렀다.
그건 그렇고, 조금만 더 있으면 당장 일어나서 야자나 하러 가야 하는데. 그 생각을 하니 몸이 더더욱 무거워졌다. 하지만 아직은 저녁 시간이고 좀 더 누워 있을래. 누워 있게 해 주세요. 부탁입니다. 내 사소한 바람은 들리지도 않는지 정적을 깨고 야자 시간을 알리는 예비 종소리가 울렸다. 엎드려 있건 앉아 있건 다들 하나같이 신음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장이 소화전 문을 열어제꼈고 우리는 일제히 소화 던전의 바깥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