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간에 들었던 거 기억 나? 마가렛 대처라고... 그... 엄청 오래 전에 살았던 공학자 이야기. 여길 맨 처음 방문한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였어. 처음엔 되게 당황스러웠는데 왜냐하면 무슨, 다짜고짜 찾아와서 나한테 부탁을 하기 시작했거든. 이야기를 몇번 더 해보고 나니까 그런 이야기가 있더라고 무슨 동굴 속에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모든 걸 다 이뤄줄 수 있다더라 하는... 그런 비슷한 이야기 많이 들어봤지? 무슨 지하 동굴 안에 용 같은 거라던가, 소원을 이뤄주는 산신령이라던가... 그 소원을 이뤄주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했어.

하지만 나는 내 스스로도 그럴 힘이 있는지 잘 몰랐고 나는 대처에게 되물었지. 그러자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대처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했어. 대처와 앉아서 더 이야기를 해 보기로 했어. 대처는 나를 만나기 위해 인류 중 몇몇이 수 천년 동안 이것저것 해 왔고 실제로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어. 나는 솔직히 모든 걸 털어놨어. 나는 내가 여기 왜 있는지도 모르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대처는 내가 소원을 이뤄주는 사람임이 분명하다고 했고, 내가 왜 이런 모습으로 서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일단은 날 도와주기로 했어.

하지만 돕는다고? 어떻게? 우리는 서로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고 그냥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나 했어. 주로 소원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 내가 소원을 이뤄줄 수 있나? 있다면 어떻게? 그걸 님이 모르면 어떻게 해요. 참. 궁금한 점들은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궁금했던 건 대처가 나한테 빌 소원의 내용이였어. 대처는 이것저것 생각해봤었대.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대. 사람들이 원하는 거야 뭐 비슷비슷했었다고 했지. 당장 생각나는 간단 무식한 것들로는 돈? 명예? 권력? 영생? 지식? 같은 것들이 있었어. 왜, 지금 SNS에 올라오는 그런 글들 있잖아. 이런 저런 알약들이 있는데, 이걸 먹으면 매달 돈이 300만원씩 들어옵니다. 이걸 먹으면 읽지 않은 모든 책의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이걸 먹으면 죽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원을 비는 것 조차도 그리 간단한게 아니였지. 문제는 그 ‘다음’ 이였어. 그러니까, 만약에 돈이 무한정 있으면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세상의 모든 것을 알면? 만약 영원히 산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같은. 슬픈 생각도 했고 기쁜 생각도 했어. 영원히 살면, 아마도 같이 살던 많은 사람들이 죽을 텐데. 그렇다면 다 같이 죽지 않고 살면? 그렇다면 세상에 사람이 엄청 엄청 많아질 텐데... 그렇다면 땅덩어리도 늘려야 하나? 하나의 소원으로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세상 모든 것들이 복잡한 관계로 서로 얽혀 있었던 거야.

나는 거창하게 세상 이야기를 할 것이 아니라 쉬운 소원을 빌어보는 게 어떠냐고 말했고, 대처는 그 점에 있어서는 단호했어. 대처는 자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모두를 위한 소원을 빌고 싶어 했어. 그래서 우리는 고민했지.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스스로도 우리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세상의 문제를 대신 고민해야 한다는 문제였어.

그러다 어느 날에 대처는 소원 하나를 정했지. 사실 스스로도 소원을 정해버리고 싶지는 않았대. 하지만 나와 달리 대처에게는 제한 시간이 있었어. 늙어갔던 거야. 대처는 조급해졌고, 곧 있으면 세상을 떠나야만 했지. 대처는 소원을 정했다고 나에게 말했어. 그게 뭐였냐고?

세상이 ‘가능한 최선의 세상’이 되게 해 주세요.

그 이후로 대처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어. 세상도 그대로였고, 동굴도 그대로였지. 나는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어. 이 세상이 정말로 ‘가능한 최선의 세상’이 되었는지 아닌지도 알 방도는 없었어. 바뀐 것은 하나였어.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지. 나는 그 사람들에게 이 깊숙한 동굴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고 물어봤어. 모두 하나같이 대처 이야기를 했어. 위대한 대처가 죽기 전에 말했다고. 자기는 세상이 ‘가능한 최선의 세상’ 이 되길 빌었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고 느껴지면 날 찾아보라고 했던 거야.

하지만 나는 대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 뿐, 아는 것도 없었고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었지. 나는 금방 피로해졌어. 하루에도 수천, 수백명의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서 각자의 이야기를 했어. 적당한 이야기를 만들어 둘러대기 위해 나는 당대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어. 너무 어려운 건 못 읽었고, 그냥 영화 몇 개 본 게 다인데... 대처가 생각났지. 대처는 좋은 이야기를 수집하는 데 능했어. 같이 있을 때, 조금만 더 물어볼걸. 답을 내기엔 내가 너무나도 멍청하고 게으르고 무능했어. 간신히 나는 답을 최대한 미룰 수 있는 몇 가지 방법들과 이야기들을 고안해냈어. 하지만 만능 열쇠같은 이야기는 없었고, 설령 있다고 해도 그게 그리 간단할 리가 없었지. 나는 어떻게든 신 행세를 하며 얼버무려보려고 했지만 몇몇 사람들은 성질을 부리고, 헛소문을 퍼트리고, 어떤 날에는 날 동굴 안에 묻어버리려고도 했었어. 나는 도망쳤지. 더 깊고 복잡한 굴을 파서 말이야. 이제 나는 대처가 나에게 일러 준 것 처럼 내가 소원을 이뤄줄 수 있는 존재라고 스스로 믿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그렇다면, 나에겐 도대체 무엇이 남을까? 멍청한 건 여전했지만,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없는 한 가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그것도 역시 다음이였어. 나는 대처와 달리 죽지도 늙지도 않고 살 수 있었어. 수백, 수천년이 지나면서 동굴에 들어오는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방법도 복잡해졌고, 땅굴도 이제는 쉽게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들어오고 나가는 방법이 복잡해졌어. 동굴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고 대부분은 이야기로만 남았어. 그러다 가끔, 아주 우연히, 사람들이 동굴에 들어오고는 해. 그 사람들이 소원을 빌면, 나는 사과를 깎아 줘. 그리고 영원한 다음을 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