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늘 안경을 안 끼고 왔냐구요? 아뇨, 끼고 있는 거에요. 그니까 설명을 하자면 제 안경은 원래 안경 알이 없는 안경이잖아요? 네? 아 모르고 계셨구나. 그게 아니라구요? 알 있는 거 안다구요? 들켰네요. 근데 마찬가지로 안경 알이 없는 안경을 사람들이 끼고 다니듯이 저도 그러고 있는 거에요. 안경을 끼고 있지 않지만 안경을 낀 거라구요. 묵한테서 무슨 헛소리 옮았냐구요... 이건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데요... 글쎄 왜, 그거 보셨죠 그거 뭐 올라왔던데. 안 봤다구요? 보셔야 해요. 무슨 집들이 하는 건데 고양이 용품 잔뜩 사 두고 정작 고양이는 집에 없는 거 말이에요. 웃기죠? 제가 더 웃기다구요? 아이 참. 과찬이시네. 네? 아하. 음흠. 그러니까 무슨 그런 전래동화 말이죠? 그...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옷이라고 해서 보이는 척 하다가 된통 당하는 거. 음음. 잘 이해가 안 되면 캐릭터 설정 같은 걸 생각해 보면 어때요? 네네 파워레인저처럼. 하나는 빨강이고 하나는 노랑이고 하나는 초록이고, 이렇게 각자마다 색깔이 하나씩 있으면 기억하기 편하잖아요? 그러는 편이 예쁘기도 하고 무슨 무슨 이유가 있다고 느껴지죠. 별자리 점을 보고 꽃말을 찾아보고 상징석을 찾아보는 것처럼요. 그런 편이 기억에 남잖아요? 단순하고. 더 직접적으로는 안경 끼는 캐릭터가 있잖아요. 무슨 모에 속성이라던지... 캐릭터요... 아하. 네. 더 어려운 이야기를 했네요. 오타쿠 같은 게 싫으시면 그냥 안경 낀 남자랑 안 낀 남자 생각해 보세요. 안경 말고도 다른 곳이 다르지 않나요? 맞죠? 이제 좀 이해가 가죠? 간다구요? 아하. 네. 음음. 음... 예시 더요... 좀 더 보태자면 프로레슬링이나 야구에서도 그러잖아요 무슨 팀은 주황색이고 이 사람은 악역 역할이고... 몰랐다구요? 안 본다구요? 다른 거 없을까요... 예시는 그만 들게요 그러면. 그나저나 오늘 되게 어색했죠? 신경쓰였죠? 그래서 오늘 안경 안 끼고 왔냐고 물어본 거 아니에요, 그렇게 말이 없었으면서. 바로 그거에요. 제가 안경을 끼지 않음으로써 안경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거고 평소에는 잘 보이지도 않던 안경이 보이게 됐잖아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게 바로 그거에요. 저는 궁극의 안경을 낀 거라구요. 안경 그 자체. 안경 이데아 같은 거죠. 아 예예.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익숙했던 게 안 보이면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것?’ 아 참, 이 이야기가 편할텐데. 그럼 왜 안하냐구요? 또 오타쿠 이야기에요. 네. 네에... 뭐 상관없으시다면. 부재의 백합이라고 들어보셨어요? 네. 근데 진짜 웃겨요. 파란 하늘에 경운기와 논만 줘도 이 사람들은 여자 둘이서 연애하는 이야기가 생각난대요. 지하철 정거장에 놓인 벤치와 쓰레기통만 봐도 생각난대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구요? 저도 모르죠, 그런데 생각이 난대요. 이제 이 사람들은 여자 둘이서 연애하는 이야기를 찾다가 풍경 사진을 들여다보는 거에요. 아유 몰라요 애초에 그런 질문 안 했으면 이런 말 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반 쯤은 선배 잘못이겠죠. 뭐 보이긴 하냐구요? 렌즈 끼고 왔거든요. 그러면 처음부터 그렇게 말 하면 될 걸 왜 빙빙 돌려서 말하냐구요? 그 편이 재밌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