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책상에 푹 박는 것 말고는 마땅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가만히 있는 것도 명분이 있어야 했다. 우울이 가장 싸게 먹힐 것이다. 우울에도 명분이 필요하다. 오히려 우울이라서 대의 명분이 필요하다. 우울은 설명되어야 한다. 반드시.
‘오늘 아무것도 안 먹었으니까.’ 간단무식한 답변이였다. 아침도 안 먹었고 점심도 걸렀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떠어떠한 회사에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어제 글을 썼다. 엊그저께 아침, 내지는 저번 주일수도 있고 저저번 주일수도 있고. 정확히는 모른다. 글 쓰는 사람은 이러저러한 사내 규정을 통해 오늘은 배고프면 우울해진다고 설명하는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글 쓰는 사람은 우울에 대해 적당하게 알고 있는 사람의 적당한 글을 보고서 배고프면 우울해진다는 이유 몇 가지를 찾아냈다. 그 사람을 직접 만나 이야기해보기도 했다. 그리고는 포털 사이트 메인에 올려놓았다. 문제는, 누군가가 오늘 아침 등굣길에 그 기사를 가지고 와서 떠들어댔던 것이다. 그래. 뭐, 그 말대로 삼시 세끼만 잘 챙겨 먹으면 엉엉 울고 싶은 기분이 해결 될 것이다. 평소의 나라면 속으로 그 기사를 드미는 저의에 대해 따져물으며 부글부글 끓어댔겠지만, 끓을 기력도 없는 상태였다. 정말로 아침밥을 못 먹었기 때문이다. 먹으려고 불려놓고 하지도 않은 밥. 쌀뜨물도 아닌 쌀 있는 물의 그 뜨뜻미지근함. 찬 물도 아니고 기분 좋은 따뜻함도 아닌 그 어떤 수요도 없는 물의 온도다. 그 물에 몸을 내맡기고선 반쯤 졸고 있었다.
‘다섯 시간 남짓밖에 못 자서 그래. 어제 좀 푹 자고 오지 그랬어.’ 왜 다섯 시간 밖에 못 잤지? 야간자율학습을 다 끝내면 밤 11시... 버스도 다 끊기는 시간에 집으로 걸어 들어가면 족히 한 시간은 걸리고... 물론 가서 바로 잤으면 몇 시간은 더 잘 수 있었겠지. 아니나 다를까 밤새서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봤고... 젠장, 휴대폰 때문이야. 기능 적은 휴대폰으로 바꿔버릴까? 아니면 그냥 팔아버릴까. 아무것도 안 하고 안 보고 바로 자고... 그러면 몇 시간이 남지? 30분. 15분. 10분. 짜증나. 슬퍼. 어차피 시간은 가고 고등학교 또한 영원히 다니지도 않을 거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면 모든 걸 잊어버리겠지. 모두들 그렇듯이. 나는 확신한다. 그러니까, 다른 생각을 하는 편이 낫다. 떡볶이. 떡볶이. 오뎅탕. 미역국. 미역국은 바지락을 넣은. 오, 생각이 바뀌었네. 생각만 바뀌었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네. 생각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그만 두는 것이 좋다. 왜, 그런 글 있지 않은가. 부정적 감정의 수명이 90초라고. 90초 이후부터는 그냥 화내기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명상 더 하고, 커피 몇 잔 마시면 괜찮아질 것이다.
생각에 빠지면 생각을 그만두지 못한다. 당장 기억나는 일화 하나가 있다. 처음 이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내가 살게 된 곳은 사람이 살지 않은지 족히 몇 십년은 되어 보이는 오래된 단칸방이였는데, 여기저기 붙어 있는 가전 제품들이 전부 누런 색이였다. 계약하기 전 집 주인인지 아니면 그 대리인인지 모를 사람이 무상으로 이것저것 교체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어째서 이 방이 이렇게 오랫동안 비어 있었는지, 왜 이렇게 좋은 조건에 이 방을 내놓았는지 궁금했지만 애써 묻지는 않았다. 그렇게 단칸방에 들어가 살게 된 이후로 몇 주 동안 공구를 둘러 맨 사람들이 좁은 방을 들락날락거리게 되었다. 모두 살집 있는 아저씨들이라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아저씨들은 오래된 가구를 교체하러 왔다고 하고서 단칸방 안에 들어와 전화를 걸어 누군가와 실랑이를 벌였다. 아마도 집 주인과 견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였겠다. 전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끊겼다. 화를 내며 쉬익 쉬익 숨소리를 내는 아저씨가 있었다. 한 숨을 크게 쉬는 아저씨도 있었다. 호탕하게 허허허 소리를 내며 웃어대다 전화가 끝나기 무섭게 악담을 퍼부었던 아저씨가 기억에 남는다. 그 사이에서 곤란한 것은 나였다. 잔뜩 화가 난 아저씨(들)은 낡은 가구들을 떼어내는 것 말고도 나에게 말을 거는 등등의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정 싫으면 멀찍이 방 바깥 계단에 앉아 휴대폰을 꺼내 ‘배고픔은 우울의 원인’ 비슷한 기사를 들여다보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그 아저씨들 중에서 한 명이 했었던 말이 있다. 그 내용이 정확히 무엇이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텔레비전과 관련된 이야기였을 것이다. 내 단칸방에는 텔레비전이 없었고, 아마 거기서 몇 마디를 더 얹었을 텐데, 분명. 무슨 말이였는지는 구태여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그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은 기억난다. 답하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그 대신 바나나맛 우유를 냉장고에서 꺼내 아저씨에게 건네주며 수고하셨다고 말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 날 밤 나는 잠도 자지 않고 텔레비전 이야기를 곱씹었다. 그러다가 또 이런 일에 굳이 화를 덧붙이고 마는 내 속좁은 모습에 대해서도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싸게 집을 구하고 게다가 무상으로 새 가구까지 받았다. 여기서 화를 굳이 내야 할까? 이어서 집 주인과 아저씨와 나와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멀게 멀게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아저씨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것과 내가 집을 싸게 구한 것은 과연 별개의 일일까? 별개라면 얼마나? 애초에 아저씨가 화를 낸 이유가 뭘까? 아저씨가 나에게 끔찍한 말을 한 이유는? 역시 생각 없이 했던 말이 아니였을까? 하지만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방을 구한 것은 1월 중순이였다. 지금은 학기가 끝나가는 12월이고. 1년 정도면 그렇게 오래 전 일도 아니다. 이런 식이다. 그 때 텔레비전 이야기로 밤을 지새웠다면, 내가 난생 처음으로 낸 화는 선캄브리아대 정도의 길이였을 거다. 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