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가 되면 그 집으로 갔다. 집은 높고 길다란 아파트였다. 22층. 현관 문 앞 신발장 위에 걸린 가족 사진에는 그와 엄마 아빠 이렇게 세 명이 있었다. 집은 세 명이 살기에는 너무나도 넓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현관문과 가장 가까운 자기 방으로 들어가 커튼을 치고 문을 걸어잠근다. 형광등을 끄고 다른 조명을 켠다. 무지갯빛 LED가 여기저기 빛을 낸다. LED들은 천장에도 있었고 키보드에도 있었고 모니터 뒷편에도 있었고 책장 뒤에도 있었다.
음악을 튼다. 스피커는 해파리의 거대 변종처럼 생겼다. 전원을 켜면 무지개 빛이 났고, 스피커에서 집채만한 소리가 났다. 웅웅 거리는 소리가 컸다. 락 음악이였다. 시대착오적이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잘 알려진 것들이였다. 묵은 잘 알려진 남자 가수들의 영어 노랫말을 흥얼거리는 것을 좋아했다.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알았다. 시간을 보내는 방법 말이다. 무지개 LED가 비치는 책장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다. 모델 건과 탱크 모형들, 그리고 피규어와 만화책들. 그리고 전쟁 게임. 나는 피규어와 모델 건이 같이 놓이는 것이 처음에는 이질적이고 특이한 취향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이제 사람들은 전쟁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맥락이 떨어져 나간 전쟁 게임만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둘은 비슷하다. 묵은 그렇게 말했다.
전쟁 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우리 또래들이였다. 나이를 먹어갈 수록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워야 한다고 무기가 설명해줬다. 내가 본 그 광경은, 누를 버튼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거대한 MMORPG였다. 누군가를 쏴 죽이기. 죽임 당하기. 해파리들을 생각했다. 바다 안에서 죽도록 침잠하면서 반짝반짝 빛을 내며, 패턴이 있으면서도 없는 것 같은. 사실 나는 해파리들을 본 적 없다. 하지만 학교에 교과서를 두고 온 날 밤 나는 복도 너머로 불 꺼진 정보실을 보았다. 그 어두컴컴한 복도 안에서 점등하는 모니터 전원 버튼이 있었다. 모니터 전원 버튼은 모두 같은 주기로, 그러나 다른 시작점에서 어둡고 새파란 빛을 깜빡이고 있었고, 같은 것 같으면서도 아닌, 다른 것 같으면서도 또 그것만은 아닌 신비한 광경이였다.
심해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무기는 그렇게 일러주었다. 곰곰히 생각하면 할 수록 더욱 이상했다. 누를 버튼이 하나밖에 없는데, 마치 거대한 선택지가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버튼을 누르거나, 누르지 않거나로 이뤄진, 거대한 세상. 그 곳에서는 나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 있었다.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기는 영수증이였다. 다만 아무런 정보값도 없는. 끝나지 않는. 혹은 그러지 않을 거라 약속하는.
하지만 저녁 6시가 되면 부모님이 들어오신다. 그 전에는 집을 나가야 한다. 형광등이 켜지고, 커튼도 다시 연다. 모임에서 튕겨져 나온다. 아파트 밖은 춥다. 내일은 학교에 가야 하고, 구멍을 파야 한다. 또, 또, 또... 무엇을 하냐면... 마땅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누군가를 쏴 죽이기. 죽임 당하기. 하늘은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못 다한 일들과 이야기에 대해 생각한다. 저게 무슨 색깔이였더라. 해파리에게서 본 것 같았다. 어딘가의 그래픽 같기도 했다. 본 듯 만 듯 했다. 현실은 가상과 뒤섞인다. 엔딩을 본 후에 게임이 끝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