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겠어.
피곤한 사람에는 두 종류가 있다. 보는 사람이 피곤한 것과 그 사람이 피곤한 것. 여기서 말하는 피곤한 사람이란 놀랍게도 이 둘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피곤한 사람은 셀 수 없이 많다. 예를 들어보라면 당장 떠오르는 건 두 명인데, 하나는 장이고 (끔찍하게도) 하나는 이 서 선배다. 도통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 밖에 할 줄 모르는 어딘가 고장난 사람. 이런 질문은 어디에도 가지 못한다. 서로 기분만 밑도 끝도 없이 꿀꿀해질 뿐이다. 보통 영양가가 없다... 고 그런다. 더 나쁘게는 정신병이라고 부른다.
모르는 게 많네요.
그렇다고 갑자기, “와, 여기 정말 재미있어요! 인생 만세!” 를 외치며 화제를 돌려버릴 수도 없고(사실 몇 번 시도해보긴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있을 수도 없었다. 결국 할 수 있는 거라곤 응, 응, 응, 하는 것 뿐인데, 이렇게 몇 마디 보태주면 서 선배는 계속해서 지옥의 나선 계단을 내려가듯이, 그것보다는, 파내려가듯이, 하강, 하강, 또 하강할 뿐이다. 그러니까 응 응 할 바에는 인생 만세가 낫다. 그건 싫으니까, 음... 그러니까, 식판에 대한 이야기는 어떨까. 식판의 두께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식판의 미학적인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식판과 급식실과 저녁 시간과 저녁 시간을 담당하는 외부 업체가 우리 학교의 끔찍한 급식 줄 구조와 버무려져 얼마나 끔찍하게 망가져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그걸 싫어하면서도 좋아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자.
뜬금없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하겠지만, 자기 변론을 하자면... 경이는 한정된 자원이고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너무 많은 경이를 소진한다. 사람들은 이제 빛에 가까운 속도로 모든 것의 원인과 결과를 밝혀내고 있다. 그 거대하고 빠른 세상 안에서 내가 하는 이 이야기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건 세상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사실 몇 가지를 발견하기 위해 내 머릿 속에서 열심히 돌리고 있는 입자 가속기다. 경이-강입자 가속기다. 말이 어렵고 거창해보이지만, 간단히 말하면 TMI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발견된 새롭고-미미하고-복잡하고-어렵고...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은 사실이 흥미를 끌기란 어렵고 적절한 대화 주제가 되기에도 어렵다. 하지만 달리 방법은 없다.
떡볶이 먹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는 건가?
떡볶이 맛있잖아요.
휴대폰 들여다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는 건가?
재밌는 거 계속 올라오지 않나요? 이번에 올라온 그거 보셨어요?
...
그래, 그렇지.
긍정이라고는 귀 씻고 찾아봐도 없는 무미 건조한 ‘그래, 그렇지.’ 다. 가끔 서 선배의 무미건조한 말에 화가 나기도 한다. 고민 없는 고민. 질문 없는 질문. 화가 나지만, 우습게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실은 선배가 왜 이러고 있는지도 내심 알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모를 뿐이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으으. 피곤하다. 여기서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뭘 설명할 수 있을지, 내지는 무슨 말을 보태어야 할 지 모르겠다. 구태여 얄팍한 동정심을 내보이기도 싫고, 어려운 단어를 찾아가며 선배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고, 선배가 구석에 앉아서 엉엉엉 하고 있으면, 내심 나도 옆에서 엉엉엉 하고 싶었을 뿐이다. 선배가 뭘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서도. 다들 그럴 것이라는 확신 아닌 확신도 있다. 하지만 구태여 모르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고 싶지는 않았다.
무기 웃는 거 웃기지 않나요.
그래, 그렇지.
거짓말이다. 무기는 시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