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밤새 춤을 췄다. 복잡하고 과잉되고 활기한 노래가 나온다. 가끔은 고음이, 대부분은 웅웅거리는 중저음이 온 몸을 문자 그대로 빠개 버렸다. 춤을 추는 모습은 한없이 기괴했다. 길게 머리를 늘어뜨리고, 머리털, 머리털. 바지와 티셔츠와 후드티를 크게 늘어뜨리고, 땀 냄새를 내며... 그러다가 순간 조용해진다. 자연스러운 연결부도 없이 재생 목록에 있는 mp3 음원만 차례대로 나온다. 재생 목록이 세 번째 반쯤 돌아갔을 때 음악은 멈췄고 순간 옥상은 조용해졌다. 말했다.

여러분이 원하는 건 여기에 없습니다.

포기했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세상이 싫어서 모두 도망치기로 결정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있는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즐거워합니다. 거리를 둘 때 즐거워합니다. 세상을 잊을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저는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해버렸습니다. 일종의 금기 같은 겁니다. 저는 이 다음을 상상했습니다. 미래가 어떻게 될 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죠.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은 더 이상 세상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보다는 세상 그 자체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짓이 제 전부이고 제 정체성입니다. 저는 현실에 집중하지 못하고 책상에 구멍을 팝니다. 저는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다른 세상에 가 있고 깨어 있는 동안에는 다른 세상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러는 동안 어떨 때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고양감을 느끼지만, 어느 때에는 모든 것이 두렵고 다 그만두고 싶다고 하며 드러누워 버리죠.

그럴 때면 저는 멋진 말을 인용해보거나, 격언들과 설명서들을 읽어봅니다. 결국은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언제나 하나의 사실만이 남죠. 제가 하는 건 도망입니다. 부끄러움을 느낄 때 마다 일말의 자각이 남아 있다는 걸 느낍니다. 제 마지막 자존심 비슷한 것입니다. 간단히 부정해 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건 이제 제 일부입니다. 제게서 그냥 가져가 버릴 수도 없고 스스로 찢어 없애 버릴 수도 없어요.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저 뿐만이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던전에 사는 모두들이 다 함께 그 생각을 하리라는 것을 알기에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이미 세상은 거대한 던전이 되었고 사람들은 던전 안에서만 살아있다고 느낍니다. 세상은 이미 던전입니다. 사람들은 이미 이어폰을 끼고 LCD 화면으로, 햄버거로, 카페인으로 세상에 구멍을 뚫어댑니다. 세상은 이미 던전-화 되었고 던전은 모든 것을 유예합니다. 모든 것을 기대하게 합니다. 영원히요.

영원한 도피가 제 삶의 방식입니다. 영원한 죽음이 제 삶의 방식입니다. 저에겐 소원이 있습니다. 세상이 다 망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영원히요. 망한 상태로 영원히 있는 것이 아닌, 망하는 상태로 영원히 있길 바랍니다.

그 순간 옛날의, 현재의, 미래의 기억을 모두 떠올렸다. 만화처럼. 만화의 연출처럼. 만화의 컷들과 줄거리들, 모든 보고서들이 한 번에 머리 속에 들이부어졌다. 매거릿. 공학자. 오실로스코프. 이미지적. 세상이 다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소원. 빠개버리는 음악. 연분홍 색과 연파랑 색의 줄무늬 발목 양말. 세상은 던전이였고, 나는 던전의 주인이였다. 도망에서 도망치기 위해 매거릿은 나를 발명했고, 나를 버리고, 새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이 짓은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그녀는 이걸 이야기 애자일 방법론이라 불렀다. 우리는 익숙한 결말을 준비했다. 나는 머리털을 벗어 던지고 너는 다리털을 벗어 던진다. 우리는 껍데기를 교환한다. 잠옷과 속옷까지 모조리 교환하고 나면, 둘은 껍질 없이 속만 남아 누가 누구였는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한 쪽은 죽는다. 생선으로 남는다. 한 쪽은 남는다. 던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