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맥도나는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합니다. 노력 하나, 고객님께서 주문하신 필레 오 피쉬는 환경 인증 마크를 단 알래스카 생선만을 사용합니다.
야, 이거 봐라
참치래 참치 니 미래다
뭐래 미친놈이
우리는 맥도나 매장에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보잭은 상하이 스페셜을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넘기고 있다. 텔레비전에서는 '헝거 게임'이 방영되고 있었고 텔레비전이 일러준 대로 우리는 굶주린 두 짐승이였다.
노력 둘, 모든 음료에서 제공되던 플라스틱 빨대를 없애고, 대신 뚜껑이를 사용합니다 …
고개를 숙여 빨대로 음료수를 빨아먹었다. 맥도나의 228번째 체인점은 최근 리모델링을 했고, 망해버린 그 바로 옆 카페의 테이블 몇 개를 맥도나가 헐값에 얻어온 것이겠다. 그도 그럴게, 카페의 테이블은 매년 기네스북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었다. 수상 부문은 높이다. 카페 테이블은 테이블 회전율과 매출을 높이기 위해 매년 낮아지고 있었고 이제는 컨템포러리 미술 전시회장에 갖다놓아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경이로운 높이가 되었다. 우리는 바닥에 근접한 테이블에 납작하게 달라붙어 플라스틱 주둥이를 들이밀고 탄산수와 액상과당을 잘 버무려 빨아먹었다.
노력 셋, 매장 의자에 설치된 웰-빙 피트니스 장비들은 …
토끼 한 마리가 한 손에 콜라를 들고 맥도나 의자에 설치된 페달을 돌리고 있었다.
야, 저거 봐라
이번에 새로 들어온건데 진짜 웃기지 않아?
뭐래 병신이
보잭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다. 실은 보잭은 이렇게 굴 때가 가장 멋지다. 얘도 알고 있겠지, 이게 얼마나 웃기는 짓인지. 어플을 깔고 페달을 돌리면 포인트가 나오고, 포인트로 빅맥 세트를 더 싸게 사 먹을 수 있었다. 보잭은 아무 말 없이 휴대폰을 쥐고 액정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보잭은 예나 지금이나 무심했다. 아니, 사실은 무심한 듯 보이지만 무심하기로 결정한 것에 가깝다. 보잭은 예나 지금이나 좆도 신경쓰지 않았다.
너 뭐하냐?
뭐 암것도 안 하는데
그럼 줘봐 그거
아 왜
보잭의 휴대폰에는 미소녀 캐릭터 ‘하츠네 미쿠’ 를 기반으로 한 게임들이 잔뜩 깔려 있었다. 사실 잔뜩 깔려 있는 수준이 아니다. 07년도부터 24년도의 가능한한 모든 것을 일자부터 시대별로 쭉 정렬한 컬렉션이였다. 몇 개는 직접 하기도 하겠지만, 아마 소장용 비슷한 것이겠지. 미쿠 사진을 앞에 둔 수많은 어플리케이션이 휴대폰에 진열되어 있다.
내가 얘한테 원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솔직함이다. 보잭에게는 솔직함이 있었다. 구태여 밤중에 보잭을 불러서 만나는 것도 이 감각 때문이였다. 얘한테는 집착 아니면 광기에서 나오는 힘이 있었다. 뭐 대부분은 게임 과몰입이나 해외 공연에 참석하기 위해 미친 듯이 돈을 벌고 개 같이 탕진해버리는 등의 비생산적인 활동으로 삐져나왔다. 거기에 한 번 일을 시작했다 하면 자기 자신을 유기물로 대할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안 씻는 건 기본이거니와 ‘집중하느라 너무 바빠서’ 자기 관리를 할 턱이 없다. 덕분에 얘의 사회적 평판은 박살이 나 버린지 오래였다.
그냥 사람처럼 하고 다니면 편하다. 그걸 보잭이 모를 리가 없었다. 보잭은 그렇게 사는 게 안 되는 사람이였다. 사실 안 된다기보다는 안 한다고 해야 하나. 으레 음침한 애들이 하나씩 갖고 있는 요상한 정체성을 지금까지도 끌어안고 사는 것이다. 완전 미친놈. 보잭을 잘 알 수 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루시드 드림이다. 그는 루시드 드림을 연습하고 실제로 여러 번 성공했다. 다만 루시드 드림은 꾸고 나면 굉장히 피곤하기 때문에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 루시드 드림을 시도하게 된 계기를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오직 하나였다.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 미쿠와 결혼하기 위해서. 그가 루시드 드림을 꾸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해준 적이 있다. 어떤, 입구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상황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다. 그의 경우에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창문을 ‘뚫고’ 뛰어내리는 것이였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이 꿈 속에 있는 것을 아는 것이다. 친구가 들려준 꿈 내용은 다양하고, 소름 끼칠 정도로 구체적이였다. 그 캐릭터와 자신이 동창이라는 설정 안에서, 반 친구들의 단체 사진을 찍는데 둘 다 키가 커서 맨 뒤에 서게 되었는데 따라서 반 친구들 몰래 뒷짐을 진 채로 손을 잡고 졸업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던가... 하는 것이였다. 와, 진짜 미친놈. 진짜 웃기는 놈. 재밌는 놈. 대단한 놈.
배고팠던 탓인지 우리는 버거를 금세 해치우고 맥도나 주차장 쪽으로 나섰다. 보잭은 전자담배를 꼬나물었다. 화학 공정된 그 향만 맡아도 알 수 있었다. 민트맛이였다. 하긴, 보잭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한결같이 민트를 고를 수만 있다면 민트를 골랐다. 하츠네 미쿠를 향한 믿음의 증명 같은 거였다. 물론 하츠네 미쿠가 우리 세대의 물건은 아니였지만. 그 점부터가 좀 웃기는 면이 있다. 보잭은 나랑 여기서 버거를 먹고 나면 이 길을 따라 쭉 오락실로 향하곤 했다. 지금은 뭐 인형 뽑기 기계들밖에 없지만, 예전에는 오락 기기들이 엄청 많았다. 나도 보잭을 따라 몇 번 가보긴 했다. 드럼 세탁기에 기타에 드럼에 뭐가 많았지만 전부 음습한 기운을 풍기는 것이 딱 보잭 같아서... 진짜 웃겼다. 보잭은 분명히 괴짜였다. 보잭이 이렇게 살 수 있는 데에는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학창 시절에 여기 살았다면 모두가 부유하니까. 우리 동네는 실제로도 여기 사는 사람들이 부유하다는 이유만으로 인류학적 연구 대상이 된 적이 있다... 실은 앞서 말한 모든 사실들이 그의 집념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는 데 중요한 것은 아니였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야, 나 궁금한 거 있는데
뭐
이거, 이 게임 말야, 그게 그렇게 재밌냐?
아 자꾸 왜 시비야
아니 그러지 말고 나 지금 진심으로 하는 소린데
10년 뒤, 아니 50년 뒤에도, 이 게임들이 계속 나온다면, 이 게임 하고 있을 거냐?
보잭의 얼굴이 한 순간 일그러졌다. 다만 평소처럼 나를 향한 짜증은 아니였다. 그건 여태껏 본 적이 없는 표정이였다. 보잭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이내 그만둬버렸다. 보잭은 바닥을 쳐다보면서 담배 연기를 내뱉는다. 마치 ‘내가 미안, 이제 졌다. 네가 이겼어’ 하는 듯이. 그 정신 나간 보잭이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왜인지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보잭이,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내가 아는 보잭은 그냥, 미친놈인데. 언제나 솔직한 줄로만 알았지. 거짓말도 할 줄 아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