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상대적 개념
이야기
우리는 패스트푸드 지점에 있었다. 롱 패딩으로 온 몸을 둘 둘 감싼 우리는 애벌레마냥 배가 고팠고… 친구는 늘 먹던 똑같은 햄버거 세트를 두 개 시켰다. 친구는 계산을 내 카드로 하고 자기 세트메뉴 값은 현금으로 나에게 주겠다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고 두 명 분 세트메뉴를 결제하고 현금을 받았다. 나는 그렇다고 하면서도 친구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는 몰랐다. 세상에 모를 수 있는 것은 많았다.
패스트푸드 지점은 어디에나 있고 빨간 색이였다. 그리고 점원들을 제한 모든 사람들이 점원들이 무슨 일을 하는 지 모르고 있었다. 완벽한 던전이다. 지하철도 그렇고, 학교도 그렇고, 편의점도 그렇고, 화장실도 그렇고, 소화전도 그렇고, 패스트푸드 지점도 그렇다.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보니 거의 9시였다. 저녁을 먹기에도 애매한 시간이라 1층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매장의 트레이 놓는 곳은 트레이와 삐져나온 일반 쓰레기들과 먹다버린 콜라와 빠져나온 얼음들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그 왼쪽 깊숙한 복도를 지나면 관리실이 있었다. 그 관리실은 관계자외 출입금지라는 패널이 달려 있었고 도어락도 달려있었다. 점원 중 한명이 관리실 앞에 섰다. 나는 괜히 스탭의 팔을 살폈다. 도어락의 숫자는 위에서 아래로 123 456 789 *0#이였고 점원의 팔은 중간 중간 왼쪽 위 오른쪽아래 그래서 도어락의 비밀번호는 5542#이였다. 점원은 관리실로 들어갔다. 매장 안에 있는 CCTV를 살폈다. 1층에 있는 CCTV는 총 세 대였다. 지금 우리를 찍고 있는 CCTV는 단 하나다. 여러 대의 CCTV에 동시에 찍히는 건 불가능했지만 어디에 서 있어도 우리는 하나의 CCTV에만 찍힐 수 있었다. 이런 구조라면 어떤 CCTV도 관리실을 향하고 있지 않았지만 누가 관리실에 들어갔다 나왔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애초에 관리실 내부에도 CCTV가 있지 않을까, 그러면 말짱 꽝이다. 물론 관리실에 뭔가 놀라운 일이 없어도 꽝이다. 예를 들면, 바깥세계에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촬영하는 촬영팀이 관리실에 있는데, 내가 하필 그 관리실을 연 탓에 발각되어, 이 모든 걸 감시하고 있는 진짜 세계로 보내진다거나,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고대 신을 숭배하는 집단이 관리실에 있다거나. 물론 그럴 일이 일어날 확률은 희박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구태여 관리실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그러던 도중 진동벨이 울렸고 우리는 버거 세트가 담긴 트레이를 2층으로 가지고 갔다. 2층에는 사람이 한 무리 있었다. 계단에서 제일 멀리 자리잡은 창가 4인석이였고 의자는 2개였다. 맞은편에는 벽에 붙어 있는 소파 비슷한 좌석이 있었다. 넷 다 교복을 입고 있었고 학생으로 보였다. 얼굴을 살피진 않았다. 친구는 그 창가 4인석에서 제일 멀리 떨어져 있는 2인석에 자리를 잡았고 그 곳 역시 창가였다. 그 곳의 좌석은 패스트푸드 지점의 좌석이라기보다는 카페의 좌석이였다. 나무 의자도 플라스틱 의자도 아닌 정원 의자 비슷한 것이였는데 부직포같은 천을 여러 개의 매듭과 나무 프레임으로 고정해놓은 것이였다. 그 때 이 곳이 최근 리모델링된 곳이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마 그 때 좌석 몇 개가 바뀌었을 것이다. 테이블은 원형 목제 테이블이였는데, 그 높이가 상당히 낮았다. 카페 테이블, 카페 의자. 어디 카페에서 쓰던 가구들을 그대로 가져온 건가? 나는 이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보았던 이미지가 떠올랐다. 등받이가 뒤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는 의자와 심하게 낮은 테이블 앞에서 두 사람이 개미핥기처럼 상체와 목을 쭉 빼밀고 냉커피를 마시던 그림이었다. 그걸 의식한 나머지 허리를 세운 채로 세트 메뉴를 먹었는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금방 자세가 흐트러졌다. 마치 개미핥기처럼…
우리는 버거를 먹으면서 군대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미래에 있을 이야기였다. 언제 가고 어떻게 준비를 할 것이며, 어디 근무지를 가야 괜찮은 생활을 할 수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가까운 미래에 대해 잘 모를 뿐더러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마치 관리실에 무단 침입하지 않는 것 처럼. 그래서 대충 생각나는 대로 대답하면서 지금 앞에 놓여 있는 감자튀김이 얼마나 두꺼운지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말하는 도중에도 구태여 콜라는 들고 입으로 가져가서 먹었다. 아무 말이나 내뱉던 와중에 어느 새 햄버거를 다 먹고 우리는 감자튀김을 트레이에 한 데 부어 함께 먹고 있었다. 따로 먹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내 감자튀김은 남아서 못 먹고 친구의 감자튀김은 부족했다.
감자튀김을 먹던 도중 친구가 정말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 이유를 물었고 친구는 이번에 방영하는 어떤 프로그램이 있다고 했다. 방영시간은 30분이라고 했다. 나는 나와 이야기하는 대신 그 프로그램을 봐도 괜찮다고 말했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남는 것은 시간이였다. 30분이 지나고 친구는 내게 정말 고맙다고 했다. 그는 곧장 모바일 게임을 꺼냈다. 모바일 게임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합법적인 것 중에서 주식 다음으로 제일 도박에 가까운 것이였다. 특전 이벤트 뽑기 기한이 오늘까지였고 나는 그제서야 왜 친구가 현금으로 그 세트메뉴 값을 주겠다고 했는지 알게 되었다. 친구는 다른 어떤 색도 아닌 빨간 색을 원했고 대 여섯번을 돌렸는데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뽑기 기계를 돌리는 동안 누구보다 즐거워했고 나는 그 친구가 뽑기에 얼마를 썼는지 구태여 묻지 않았다.
친구는 몇 년 전부터 그 게임에 열성적이였다. 친구가 본 프로그램도 그 게임과 관련된 것이였다. 트레이에 놓인 음식이 바닥나자 우리는 개미핥기 상태에서 벗어난 채로 그 등받이가 뒤로 뻗은 의자에 온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서로 널브러진 자세로 있으니 함께 식사한 것 치고는 거리가 굉장히 넓었다. 다리를 뻗어도 발이 닿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원하는 것도 안 나오고 잃은 건 돈 밖에 없는데 그 게임이 좋냐고 물었다. 그는 한 치의 거리낌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의 수단 가리지 않는 집념을 경원시했다.
그는 루시드 드림을 연습하고 실제로 여러 번 성공했다. 다만 루시드 드림이 꾸고 나면 굉장히 피곤하기 때문에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 루시드 드림을 시도하게 된 계기를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오직 하나였다.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와 결혼하기 위해서. 그가 루시드 드림을 꾸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해준 적이 있다. 어떤, 입구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상황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다. 그의 경우에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창문을 ‘뚫고’ 뛰어내리는 것이였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이 꿈 속에 있는 것을 아는 것이다. 친구가 들려준 꿈 내용은 다양하고, 소름 끼칠 정도로 구체적이였다. 그 캐릭터와 자신이 동창이라는 설정 안에서 반 친구들의 단체 사진을 찍는데, 둘 다 키가 커서 맨 뒤에 서게 되어서… 반 친구들 몰래 뒷짐을 진 채로 손을 잡고 졸업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던가… 나에게는 그러한 열망이 없었다. 동시에 이 모습이 이 시대의 덕목인지도 생각해보았다. 그는 분명히 괴짜였다. 일반적인 괴짜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회적으로 그는 그다지 나사빠진 것이 없었다. 좋은 학교에 다니며, 성적도 좋고, 체격은 물론이거니와, 체력도 좋았다. 왜냐하면… 그는 복싱을 한다. 외모는… 음… 잘 모르겠고.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족이 있었다. 여기 살면 모두가 부유하니까. 우리 동네는 실제로도 여기 사는 사람들이 부유하다는 이유만으로 인류학적 연구 대상이 된 적이 있다… 실은 앞서 말한 모든 사실들이 그의 집념을 좀 더 깊숙히 들여다보는 데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나는 이어서 질문했다. 그 게임 3편까지 나왔고, 회사 재정도 별 탈 없어서, 지금까지 한 10년 정도 운영했는데, 만약에 이대로도 쭉, 별 사건 사고 없이 다 좋아서… 이대로 가면 한 53편 쯤 하지 않을까? 나중에 53편 나오면 할거야? 53편? 그거 나올 때가 언제쯤일까? 음… 3편에 10년이니까 똑같은 주기로 가면 족히 한 세기는 더 지나야 하겠지만, 한 50년 뒤에 나온다 치자. 50년? 음… 50년, 어디서 나왔는지도 모를 그 숫자에 대고 우리는 서로 웃었다. 그리고 친구는 말했다.
50년까지 되어서 이런 거 하고 있으면 좀 추하지 않을까?
우리는 원하지 않는다. 던전 관리실에 들어가기를 게임을 멈추기를 꿈 꾸는 걸 멈추기를… 그건 영원한 상승 곡선을 이루며 우리에게 끝나지 않는 호황을 가져다 준다. 언제는 담임 선생님이 그랬다 지속하기 위해 꿈이 있어야 하고 시도하기 위해서는 희망이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사실 사람이 살아가고 지속하기 위해선 꿈과 희망은 별로 필요치 않다. 그건 유예를 위해 필요하다. 꿈과 희망은 상대적인 개념으로 만약 우리가 원하던 것이 전부 이루어진다면 꿈과 희망을 구태여 가질 필요가 없어지고(모든 것이 이루어진 해피 ‘엔딩’이므로) 던전 또한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던전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그 꿈과 희망이 이뤄지는 걸 적극적으로 미뤄둘 필요가 있다. 던전은 분명 우리를 위한 공간이 아니고 그 안에서 미래는 계속해서 유예된다. 열어보지 못한 관리실의 입구 처럼, 친구가 그렇게 뽑으려고 했던 빨간색 처럼, 평생 걸려도 다 보지 못할 유튜브의 동영상처럼…